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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png원류고증(源流考證)

 

대보공(大輔公)의 금궤의 說은 탈해왕 당시에 나온 것이 아니라 진흥왕 六年에 비로소 거칠부 등을 명하여 나라 史記를 짓게 하였으니 대보공 생년까지 상거가 벌써 四百四十餘年이니 생각하건대 문헌이 모두 자세한 고증이 어려우며 진흥왕 시대에는 佛道만 전혀 숭상하였으므로 漆夫(칠부)의 학설은 편벽되게 믿어서 神人의 출생은 보통 사람보다 다른 까닭에 옛날에도 새알이나 큰 발자국의 일이 있었고 우리나라 전설의 흰닭 금궤도 어찌 없다고 단정하겠는가? 그리하여 드디어 사책에 기록하였는데 그후 김부식(金富軾)이 三國史를 편찬하는데 와전된 것으로 지금까지 허망한 것을 벽파하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대체로 사람이거나 물건은 출생한 그 근원을 따져보면 무두 化生인데 벌써 種族이 있은 다음에는 단연코 단군 기자 이후로 人文이 벌써 개발된 뒤인데 어찌 이런 化生하는 일이 있으리오. 여기에 가락 사람 金濟學(김제학)이 펴낸 新羅 世祖王本紀와 忠州金氏窮源錄(궁원록)의 기록된 것을 다음과 같이 쓰는데 鷄林圖(계림도)와 고이제설(考異諸設)은 삭제하지 않고 곧 세조왕본기와 궁원록으로 定한 것은 일이 오래 되었으므로 신중을 뜻하는 까닭이다.

 

黃帝後로 거舟輿(兄弟 八人이 우리나라에 와서 星山에 居하니 卽今 漆谷(칠곡)이다.  八거 村于이라고 自號하니 入거한 자는 거의 八族이다.)  

           斯干大王(사간대왕) (舟輿(주여)의 玄孫)      世祖閼智(세조알지) (斯干大王의 玄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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