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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연원


 


삼척(三陟)은 강원도 남동부에 위치하며, 상고(마한)시대에는 본래 실직국(悉直國) 이었는데 신라(新羅) 파사왕(婆娑王23년 102)때 신라에 합병, 무열왕5년 (658)에 북진(北鎭)으로 고치고, 제35대 경덕왕(景德王) 19년(760)에 삼척군(三陟郡)으로 하였는데 고려 제6대 성종(成宗) 14년(995)에 척주단련사(陟州團練使)로 하였다가 현종9년(1018) 때 삼척현(三陟縣)으로 개칭하고, 이조 태조(大祖) 2년(1393)에 목조(穆祖)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삼척부(三陟府)로 승격하였다가 제3대 태종(太宗) 13년(1413)에 도호부(都護府)로 두고, 제26대 고종(高宗) 32년(1895) 에 삼척도호부를 삼척군(三陟郡)으로 개칭 되었다.


 


 



a50035a122932555aabba247efaa63b8_1630284871_0687.png삼척연혁 (三陟沿革)

 

삼척(三陟)은 부족국가시대(部族國家時代)에는 실직국(悉直國) 혹은 실직곡국(悉直谷國)라 불러왔다。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신라 파사왕(破娑王) 二十三년(一〇二年)에 신라(新羅)에 병합(併合)되었고 고구려 장수왕(長壽王) 五十六년(四六八年)에는 발갈병과 함께 실직성(悉直城)을 쳐서 고구려 의 영토가 되었다。그 후 신라는 지증왕(智證王)六년(五〇五年)에 김이사부(金異斯夫)가 이곳을 수복하여 실직주(悉直州)로하고 김이사부가 군주(軍主)가 되었다。선덕왕(善德王)八년(六三九년)에는 진주도독부(眞珠都督附)、무열왕(武烈王)五년(六五八년)에는 북진(北鎭)이라 각각 개명하였고 실직정(悉直停)이라는 군단(軍團)이 있었다。삼국통일시대에는 경덕왕(景德王)十六년(七五七년) 삼척군(三陟郡)이라 개명하여 태수(太守)로하여금 다스리게 하고 죽령현(竹嶺縣) 만향현(滿鄉縣) 우계현(羽谿縣) 해리현(海利縣) 四個縣을 거느리게 하였다。고려의 성종(成宗)十四년(九九五년)에는 척주(陟州)라 개명하여 단련사(團練使)를 두어 다스리게 하고 현종(顯宗)九년(一〇一八년)에는 다시 삼척현(三陟縣)이라 개명하여 현령(縣令)으로하여금 다스리게 하였다。이때에 삼척에 속해있던 우계현(현 玉溪面)은 江陵府로 이속(移屬)되었다。공민왕(恭愍王) 二十二년(一三七三년)에는 현령대신 안집중랑장(安集中郎將)을,우왕(禍王)四년(一三九八년)에는 안집중랑장 대신 지군사(知郡事)를 두어 다스렸다。또 우왕十年(一三八四년)에는 삼척포(三陟浦)에 군사기지를 설치하여 그 우두머리인 만호(萬戶)를 지군사가 겸하였다。

 

조선조 태조(太祖) 二년(一三九三년)에는 목조(穆祖)의 외외향(外外鄉)이라 하여 삼척부(三陟府)로 승격되었다。태조六년(一三九七년)에는 삼척진(三陟鎭)이란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그 우두머리인 첨절제사(僉節制使)를 부사(府使)가 겸직(兼職)하였다。태종(太宗)十三년(一四一三년)에는 삼척도호부(都護府)로 개명하였고 세종(世宗) 三년(一四二一年)에는 삼척진의 첨절제사를 병마사(兵馬使)로 개명하여 도호부사가 겸직하였다。세종四년(一四二二년)에는 삼척진 병마사를 다시 개명하여 병마수군(兵馬水軍) 첨절제사로 하고 도호부사가 겸직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삼척도호부는 강릉진영병마동첨절제사(江陵鎭營兵馬同僉節制使)에서 분리되었다。 세조十二년(一四六六년)에는 부사가 겸직하고있던 삼척진병마수군첨절제사를 분리시켜 단독 진장(鎭將)을 두었다. 성종(成宗) 六년(一四七五년)에는 평릉도소재지(平陵道所在地)를 평릉역(平陵驛)에서 교가역(交柯驛)으로 옮겼는데 평릉도(平陵道)는 강릉(江陵) 삼척(三陟) 울진(蔚珍) 평해(平海)의 十五개역을 관장하고 있는 교통행정구역으로 그 우두머리를 고려시대에는 별감(別監) 혹은 역승(驛丞)이라 하였다가 조선조 중종(中宗)三十년(一五三五년)에는 찰방(察訪)이라하였다。인조(仁祖)九년(一六三一년)에는 삼척도호부관내 九個행정구역으로 나누었는데 매곡(邁谷) 부내(府內) 노곡(蘆谷) 덕번(德蕃) 북평(北坪) 복곡(僕谷) 미로(眉老) 소달(疎達) 장생(長生)이 그것이다。현종(顯宗)十三년(二八七二년)에는 영장(營將)을 처음 두고 삼척포첨절제사가 겸직하게 하여 영동(嶺東) 九個郡의 병권(兵權)을 관장(管掌) 하였으며 다음해인 현종十四년(一六七三년)에는 삼척영장이 토포사(討捕使)를 겸직하게하여 영동(嶺東) 九個郡과 울릉도(鬱陵島)의 치안을 담당하게하였다。영조(英祖) 十四年(一七三八年)에는 관내 九個面을 十二個面으로 개편(改編)하였는데 말곡(末谷) 부내(府内) 노곡(蘆谷) 근덕(近德) 원덕(遠德) 미로(未老) 소달(所達) 상장(上長) 하장(下長) 견박(見朴) 도상(道上) 도하(道下) 十二個面이다。고종(高宗)三十二年(一八九五年)에는 三陟 도호부(都護府)를 삼척군(三陟郡)으로 개명하였고 다음해인 고종(高宗)三十三年(一八九六年)에는 평릉도 찰방제도와 고종三五년(一八九八년)에는 삼척포진(三陟浦鎭)이 각각 폐지되었다。一九一四년 삼척관내 십이개면 부내(府内) 말곡(末谷)을 합하여 부내면 (府内面)이라 하였고 도상(道上) 도하(道下) 견박(見朴)을 합하여 북삼면(北三面)이라 하였다。부내 면은 一九一七년 삼척면(三陟面)으로 고쳤다가 一 九三八년 十월 一일에 삼척읍(三陟邑)으로, 북삼면 은 一九四五년 七월 一일에 북평읍(北坪邑)으로, 각각 승격(昇格)되었다。一九六〇년에는 상장면(上長面)이 장성읍(長省邑)으로 一九六三년에는 소달면(所達面)이 도계읍(道溪邑)으로 승격되었다。一 九八〇년 十二월 一일에는 북평읍 묵호읍(墨湖邑)을 합하여 동해시(東海市)로 승격하였고, 一九八一 년 七월 一일에는 장성읍과 황지읍(黃池邑)을 합하여 태백시(太白市)로 승격하였고, 一九八六년 一월 一일에는 삼척읍이 삼척시(三陟市)로 승격하였다。

 

<己丑大同譜10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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